[인터뷰] 단원고 故신호성군 어머니 정부자씨

지난 10년간 진상규명 외치며
유가족과 안전 사회 조성 앞장
“목소리 함께 내준 시민 감사”
▲ 지난 9일 안산시 단원구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사무실에서 인천일보와 인터뷰 중인 단원고 희생자 2-6반 신호성군 엄마 정부자씨.
▲ 지난 9일 안산시 단원구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사무실에서 인천일보와 인터뷰 중인 단원고 희생자 2-6반 신호성군 엄마 정부자씨.

“유가족들끼리만 10년을 걸어왔다면 과연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싶어요. 시민분들이 세월호 희생자들을 잊지 않고 함께 기억해주셔서 그 힘으로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유가족들한테는 든든한 빽이에요.”

10년 전 4월16일,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안산 단원고 당시 2학년6반 신호성군 엄마 정부자씨는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진행한 인천일보와 인터뷰에서 “어쩔 땐 포기하고 싶었고, 그만둬야 하나 싶을 때도 있었지만 시민들을 보면서 다시 힘을 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 10년간 유가족, 수많은 시민과 함께 세월호 참사에 대한 성역 없는 조사와 철저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등을 외치며 안전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공동체 활동에 힘써왔다.

특히 지난해 9주기 당일 단원고 정문에서 처음 문을 연 '기억꽃집'은 매년 4월16일마다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기억하고자 유가족들과 안산 시민사회공동체인 '4·16기억마을모임'이 합작해 마련했다.

유가족 대표로 참여한 정씨는 “세월호로 희생된 아이들과 유가족이 이웃이었던 일반 시민분들의 트라우마도 상당하다”며 “함께 치유하고 참사를 기억하자는 취지로 '우리 마을에 노란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걸고, 같이 노란 꽃을 심고 나누며 '마을 추모제'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참사 초기만 해도 호성군을 잃은 트라우마로 인해 시민들의 시선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마치 동물원 원숭이 보듯 자신을 바라보는 동정 어린 시선을 견디기 어려웠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정씨는 “집에만 있으면 호성이가 자꾸 생각나 바깥으로 나왔는데 안쓰럽게 쳐다보는 눈빛이 불편했고, 뒤에서 소곤거리는 것만 같아 이웃 얼굴도 제대로 못 쳐다봤다”며 “누군가 지나갈 때는 전화가 안 왔는데도 '여보세요'라면서 전화 받는 척한 적도 있었다. 몸과 마음이 지쳐 트라우마와 피해 의식 등이 커졌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비단 정씨만 겪는 일이 아니었다. 그날의 아픔이 사그라들지 않아 고통 속에 사는 이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는 “처음부터 목소리 내며 활동한 이들은 10년간 면역이 길러져 상처 되는 말을 듣더라도 어느 정도 넘길 수 있지만 생존자나 희생자 형제·자매 등 주변에 티를 내지 않고 세월을 삭혀온 사람들은 스트레스로 몸까지 아파하는 모습을 목격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정씨는 희생자들을 매년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시민들을 마주하면서 상처가 조금씩 치유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한창 꿈 많을 중학생, 고등학생 아이들이 본인들의 꿈을 찾아 활동해야 하는 시기에 '저희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미안합니다'라고 울먹이며 이야기했을 때 너무 가슴이 아프고 고맙기도 했다”며 “기성세대로서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미래 세대가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잊지 않을게, 함께 할게'라는 약속 때문에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햇빛이 쨍쨍할 때나 한결같이 함께 피켓을 들고 목소리 내주시는 시민분들도 많다”며 “유가족도 아니고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도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서서 응원·위로해주시는 시민분들의 모습을 보며 감사함을 보답해 생명이 존중받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앞장서야겠다”고 다짐했다.

/글·사진 김혜진 기자 trust@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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