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 아픔 남아있는 팽목항
방파제 벽엔 위로·다짐 메시지
“같이 아픔 덜어줄 수 없어 미안”
“미안합니다.” 언제부턴가 이 말을 들으면 세월호 희생자들이 먼저 떠오른다. 구해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자주 기억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대한민국을 슬픔과 상처로 관통하는 세월호가 돌아오지 못한 지 꼭 10년이 됐다. 누군가는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선 그 기억을 잊어야 한다고 했던가. 하지만 세월호는 결코 감히 잊을 수가 없다. 계속 미안해하고 아파해야 한다. 그럴수록 대한민국에 안전의식이 뿌리를 더 깊게 내려 제2의 참사가 일어나지 않을 터. 또한 유가족들의 슬픔을 달래주는 일이기도 하다. 인천일보는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유족을 만나고 참사 현장을 찾아 그날의 기억을 되짚었다. 4편의 기획기사를 통해 10년간 우리 사회가 얼마나 안전해졌는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등을 진단하고 '제2의 비극'을 막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다.
“긴 여행을 끝내고 이제 그만 돌아오렴.”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2주일 앞둔 지난 1일 오후 1시쯤 전남 목포신항만 입구. 이곳에는 아직 찾지 못한 세월호 실종자 5명을 기리기 위한 조그마한 분향소가 마련돼 있다.
단원고 2학년생 박영인·남현철(17)군과 교사 양승진(57)씨, 부자지간인 권재근(51)·권혁규(7)군의 영정 사진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고, 바로 앞에는 추모객들이 가져다 놓은 듯한 봉지 과자와 커피, 귤도 놓여 있다.
목포신항만은 세월호 선체 거치소가 있는 곳이다.
2014년 4월 15일 오후 9시 인천항에서 승객 476명을 태우고 떠난 세월호는 다시 돌아오지 못한 채 낡고 부식된 모습으로 이곳에 서 있다. 선미 쪽에는 인천에서 출발했음을 알리는 '세월 SEWOL 인천 INCHON(인천의 옛 영문 표기)'이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바닷속에 잠겼던 세월호가 겨우 뭍으로 올라온 건 2017년 3월 31일이었다.
세월호가 목포신항만으로 옮겨지자 40여개 목포 시민단체들은 '세월호 잊지않기 목포지역공동실천회의'를 조직하고 기념사업을 활성화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최송춘 목포지역공동실천회의 상임대표는 매일 항만 입구 앞 작은 컨테이너 사무실에 출근해 추모객들을 안내하고 있다.
최 상임대표는 “매번 이렇게 찾아와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추모객들에게 감사하다”면서도 “세월호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거 같아 아쉽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6월까지는 세월호 선체 내외부 참관이 가능했지만 이후 7월부터는 선체 내부 참관이 전면 금지됐고 외부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참관 방식도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할 정도로 출입 조건이 강화됐다. 현재는 목포신항만에 신분증을 보여주고 출입증을 받으면 약 100m 거리에서 멀리서나마 세월호 선체를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최 상임대표는 “그동안 가까운 거리에서 세월호를 보고 '이런 큰 배가 어떻게 그렇게 빨리 가라앉을 수 있었나' 하고 의구심을 갖는 추모객들이 많았다”며 “선체를 가까이에서 보는 것과 멀리서 보는 것은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세월호 선체를 통해 전달되는 감상도 그만큼 옅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앞서 이날 10시에는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를 찾았다. 고요한 정적에 이따금 뱃고동 소리가 울려 퍼지는 등 비교적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이곳은 10년 전 세월호 참사 당시 유가족들이 배에 탑승했던 자녀와 부모, 친구들이 어서 돌아오기를 간절히 염원했던 장소다.
세월호가 가라앉은 지점은 팽목항에서 11시 방향으로 30㎞나 떨어져 있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다.
유가족들은 더는 이곳에서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진 않지만 그리운 마음은 팽목항에 그대로 남아 있다.
참사 당시 유가족들의 서글픈 마음이 서려진 방파제 벽은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시민들의 위로와 사과, 그리고 “잊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작은 네모 칸 안에는 '사랑한다', '미안하다', '그립다'란 단어가 알알이 새겨져 있다.
특히 한 추모객은 이 벽에 바다가 그려진 그림과 함께 “긴 여행을 끝내고 이제 그만 돌아오렴”이라는 글귀를 적었다.
현장에서 만난 진도읍 주민 오성수(67)씨는 아침에 이곳에 올 때면 희생자들을 위해 잠시 묵념한다고 한다. 그는 참사 당시 다른 주민들과 함께 식사를 제공하는 자원봉사에 나서기도 했다.
오씨는 “세월호 참사 당시 주민들도 큰 아픔을 겪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 기억이 희미해지고 있다”며 “그러나 유가족들에겐 평생 못 잊을 아픈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러면서 “같이 아픔을 덜 수 있도록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데 그게 안 돼서 미안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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