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1960년대를 대표하는 신동엽 시인의 시 '껍데기는 가라'이다. 뭣도 모르고 문학도를 꿈꾸던 시절 참 많이 되뇌던 시다. 세월이 지나 4월이 돌아오면 낡은 앨범처럼 꺼내 보는 그런 시다.

4년마다 4월 총선 시즌이 돌아오면 개인적으로 '껍데기는 가라'처럼 어울리는 시도 없다. 그놈의 껍데기는 그렇게 가라고 해도 어찌 그리 가지도 않고 우리 주변을 맴도는지. 올해도 어김없이 낯설지 않게 어슬렁거린다.

이번 선거 과정은 역대 선거와 달랐다. 여당 국민의힘보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공천 파동이 거셌다. 21대 국회의원 의석수가 민주당 180석, 국민의힘 103석이다 보니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벌어진 현역 의원 물갈이에 반발하는 잡음은 당연히 민주당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상대적으로 국민의힘은 내부 잡음이 적었다.

그런 과정에서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상대 당에 수십년간 적대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정치인이 하룻밤 사이에 부끄럼 없이 말을 갈아탔다. 당을 창당해 다른 살림을 차려 나가는 것은 정치적 신념 때문이라고 하지만 선거 며칠 앞두고 상대 당으로 말을 갈아타는 것은 좀 이해하기 힘들다.

더 볼썽사나운 것은 경선에서 탈락한(컷오프) 정치인이다. 한 사례로 민주당 간판으로 경기지역에서 시장까지 역임했던 한 인사는 듣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자신의 SNS에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위한 이비어천가를 외쳤다. 컷 오프되자 돌연 막말을 쏟아냈다. 심지어 이 당 저 당 지지 선언을 하고 다니고 있다. 그동안 정치적 신념이나 있었나 싶다.

민주당뿐만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친분을 내세우던 정치인들도 다를 바 없다. 그렇게 친윤이고 싶어했던 그 많은 사람이 은근슬쩍 선거공보물에서, 후보 명함에서 윤 대통령의 사진을 지웠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정권심판론이 거세지면서 벌어진 일이다. 세상인심 사납다.

사적 영역에서 자유로웠던 말 잔치가 공적 영역에 들어와 엄격해져 일부 후보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수년 전 유튜브에서 했던 말들이 국회의원 후보가 되자 막말 논란에 휩싸였다. 관심받고 싶어서, 학자의 견해로, 정치적 신념에서 했던 이말 저말이 세상의 이목을 받고 있다. 말로 성한 자 말로 망한다는 말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 논란의 말 중 옥석을 가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마녀사냥처럼 몰아세우기보다 좀 더 학술적으로 검증해봐야 할 말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혹시나 선거에 영향을 미칠까 봐 특정 후보를 거론하지 않겠지만, 선거 결과에 따라 후폭풍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불법대출,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음주운전 등은 말할 가치도 없는 논외다.

4∼5일 실시된 사전투표에 경기지역 선거인 1159만5385명 중 342만5648명(29.54%)이 사전투표에 참여했다. 지난 21대 총선 당시 23.88%보다 5.66%p 높았다. 전국 사전투표율은 31.28%로 역대 총선 중 최고의 기록이었다. 이 만큼 선거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이런저런 이유를 떠나 오는 10일이면 유권자의 심판을 받아 당선자는 봄 꽃길을 걷겠지만, 낙선자는 잔인한 4월을 보내야 한다. 내 작은 바람은 껍데기는 가고 알맹이만 남아 좀 안전하고 편안한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 김기원 경기본사 사회부장.<br>
▲ 김기원 경기본사 정경부장

/김기원 경기본사 정경부장